[더팩트 | 박종권 언론인]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국민추천제에 호응이 뜨겁다. 대통령실은 ‘진짜 일꾼 찾기 프로젝트’ 시행 첫날에만 1만1324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추천이 가장 많이 몰린 자리는 법무부 장관이었다.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과 검찰총장 순이었다.
사법 전반에 대한 개혁 요구가 뜨거운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장관에 대한 관심은 의정갈등의 조속한 해결을 바라는 민심이 바탕에 깔려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인물은 임은정 대전지방검찰청 부장검사가 아닐까. 임 검사는 지난 11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법무부 장관으로, 차관으로 추천했다. 검찰총장으로 추천했다. 법무부와 검찰을 부디 바로 세워달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새 정부 인사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 정치검사들을 제대로 문책하고 검찰을 바꿔줄 줄 알았는데, 정치검사들이 신속하게 옷을 갈아입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로 거듭났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윤석열 정부의 핵심이었던 검사들이 계속 중용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낙마한 오광수 전 민정수석이 검찰 특수통인데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윤석열의)형님 클럽’ 막내였던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듯하다. 그래서 그랬을까. 임 검사는 "세상이 쉽게 변하는 게 아니라 하지만 그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한겨울을 버티며 어렵게 지켜낸 민주주의이기에 세상이 좀 더 변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글을 맺었다.
바야흐로 인사의 계절이다. 새 정부가 과연 국민추천제를 얼마나 활용할지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밀실인사와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을 자임한 이 대통령인 만큼 새 내각은 그에 걸맞은 면모를 갖추리라 기대한다. 여기서 10년 전 세계 정치사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한 장면을 돌이켜 보자.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의 2015년 초대 내각이다. 남성 장관이 15명, 여성 장관이 15명이다. 말로만 남녀 평등이 아니라 수치로도 균형을 이뤘다. 여기에는 빨간 터번을 한 나디프 베인스 혁신과학경제부 장관과 검정 터번의 싱 할지트 사잔 국방부 장관도 있었다. 내각은 우주비행사부터 버스운전사, 장애인, 아프가니스탄 난민, 시크교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신 성분으로 구성됐다.
취임식에는 장관들이 성경과 꾸란과 원주민의 샤머니즘 용품을 선서에 사용했다.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지향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당시 트뤼도 총리는 기자들이 왜 굳이 남녀 성비를 일대일로 맞췄느냐 하는 질문에 "지금은 2015년이니까"라고 답했다.
문재인 정부도 남녀 비율에 신경을 썼다. 내각에 여성 장관을 30%로 배정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임기 마지막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여성을 보임하기 위해 방송사와 신문사와 잡지사 출신 여성 후보를 접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과적으로 황 희 장관을 임명하면서 균형을 맞추는데 실패했지만.
더러는 성별과 지역별 계층별 안배 인사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능력에 초점을 맞춰 인사를 하다 보면 다소 치우칠 수도 있다는 거다. 틀렸다. 인사는 그 자체로 국민을 향한 메시지이다. 능력주의 인사라는 겉모습은 실상 끼리끼리 정실 인사를 호도하는 말장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 인사를 경험했다.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출신 말이다. 그 중에서도 성골과 진골을 나눠 ‘영포라인’이 조명을 받기도 했다. 윤석열 정권은 서울법대를 중심으로 한 검찰 세력이 정부의 요직 곳곳에 포진했다. 전문성에 대한 항변 논리는 "수사해 봐서 다 안다"는 것이었다.
최강욱 전 의원은 방송에서 그들을 두고 "서울법대 내란과 출신"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최 전 의원 자신이 서울법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자조적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국정의 중요한 자리라면 그에 걸맞은 전문성이 필요하겠다. 하지만 전문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인(公人) 의식이겠다. 주권자인 국민에 복종하고 봉사하는 자리라는 인식 말이다.
지난 정권은 국민 위에 군림하다 민심의 삼각파도에 침몰했다고 볼 수 있다. 공인 의식의 출발은 선공후사(先公後私)이겠다. 이익을 보면 의리(義理)를 생각하는 견리사의(見利思義) 정신 말이다. 헌데 혼탁한 세상에 물들어 선사후공(先私後公)이나 견리망의(見利忘義)에 빠진 사이비 공인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들이미는 상황은 볼썽사납다.
공인의 품격은 역경에 처했을 때 드러난다.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풍족할 때에는 자못 품격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위 속에서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사실을 깨닫는 법이다. 세한연후(歲寒然後)에 송백후조(松柏後凋)임을 아는 거다.
역경은 인품을 담금질하는 풀무요, 마음의 깊은 병을 치유하는 양약이다. 공자도 "불우하고 고난에 처했을 때 꿋꿋하면서 부드러운 자세를 잃지 않아야 참된 품격의 소유자"라고 했다. 불행한 환경에 처했을 때 처신을 잘해야 이른바 군자의 품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조 이극이 설파한 사람을 가늠하는 법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 불우한 시절에 어떤 사람과 가까이 지냈는지 살피면 그의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거다. 부유할 때 돈을 어떻게 쓰는지 살피면 그의 품행을 가늠할 수 있고, 가난할 때 어떤 일을 하는지 살피면 그의 그릇과 뜻(志)을 헤아릴 수 있다는 거다.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추천하는지 살피면 공사(公私)의 분별을 알 수 있고, 권세를 잃고 곤경에 빠졌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지 살피면 그의 정직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썩은 나무로 대들보를 삼을 수 없다. 미술품으로 조각할 수도 없다. 그저 추위로부터 민심을 따뜻하게 감싸는 땔감으로 족하다. 그것을 가리는 것이 인사의 핵심이겠다.
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징기스칸은 글을 몰랐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고 했다. 경청(傾聽)의 힘을 알았던 거다. 경청으로 상대의 속마음과 의도까지 알아챘다는 거다. 누구처럼 1시간에 59분을 말하기보다 경청과 공평무사함으로 위대한 징기스칸이 된 거다.
이재명 대통령과 전임 정권 국무위원들의 불편한 동거는 곧 끝난다. 머지않아 새로운 내각이 국민 앞에 선보일 터이다. 새 내각의 모습에서 국민이 갈등을 치유하고 분열을 통합하며 내일을 대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읽게 되길 바란다. 논공행상도 중요하겠지만 공성(攻城)보다 수성(守城)이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공격에 능한 장수와 수비에 능한 장수는 다르다.
벌써부터 인사 검증이 시작되고 있다. 민정수석은 차명 부동산과 차명 대출 의혹으로 사임했다. 총리 후보자도 석연치 않은 채무 문제로 입길에 오르고 있다. 앞으로도 어떤 후보에게 무슨 흠결이 드러날지 모른다. 자칫하면 새 정권 시작부터 신뢰에 흠집이 날 수도 있다. 내각 구성의 조화와 균형, 당사자들의 품격과 능력에 국민의 눈길이 쏠렸다. 인사는 말 그대로 만사(萬事)이다. 또한 그 자체로 대국민 메시지이다. 인사권자도 추천자도 후보자도 이를 엄중하게 여겼으면 좋겠다.